歷史上 밝은 社會은 몇%쯤이나 되었을까!. 10%미만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끊임없는 전쟁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독재와 탄압과 억압적인 정치속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70억명중 60억명쯤은 넘을 성 싶다. 그 만큼 어두운 세상이 인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運命인가?
세상은 늘 어둠속에서 빛을 찾아 투쟁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소수의 욕심과 과시욕으로 인해서 다수가 희생하고 있는 과정을 순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어둠의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公正하고 常識的인 사회를 만들어 함께 즐겁게 살자고 소수가 희생하고 있는 것인가.?!
소수의 탐욕에 동조하는 무리가 많을 수록 밝은 날은 빼앗기고 만다. 소수만이 밝음을 취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둠속에서 헤매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 원인은 다수의 방관과 무지와 비주체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참여하고 깨우치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면 스스로가 어둠속에서 밝은 날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조정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은 어둠을 벗어 날 수가 없다.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가 주인행세를 하고야 만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의 단합된 힘"이 밝은 날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도태되거나 빼앗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옳음은 밝음속에서 찾아야 명확하게 밝혀지는데 어둠속에서 찾으면 없다. 누군가의 흑막과 조작과 음해와 왜곡으로 현혹될 수밖에 없다. 어둠속에서 일을 도모하는 대부분은 현혹을 위한 준비된 행위이기때문이다. 누구나가 동의하고 함께한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어 가질 수 있는 것은 밝음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방관하지 말고 무지하지 말고 빼앗기지 않도록 주체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지키고 힘을 기르지 않으면 누군가가 빼앗는다. 그것이 동물의 세계이고 인간도 동물이기때문이다.
밝음 속에도 어둠은 늘 있게 마련이다. 100%는 없다. 그래야 경계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생겨서 더욱 주의 하고 조심하고 경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60%이상이면 대세를 이룰 수가 있다. 40%이하의 어두운 세력을 이겨낼 수가 있다. 그 비율이 역전되면 어두운 세상에서 소수의 노예처럼 인생을 빼앗기며 살아가게 된다. 60%이상의 밝음은 다수의 삶을 목적으로 움직이지만 60%이상의 어둠은 소수의 특권을 위해서 다수의 삶을 착취하는 세상이다.
소수의 특권이 만들어 낸 어두운 세상이 밝은 세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60%이상의 행동하는 밝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 힘만이 소수의 특권에서 다수의 보편적인 삶의 질을 도모할 수가 있는 길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다른 골목이 있는 사회는 폐가처럼 변한다. (0) | 2022.10.27 |
---|---|
사회적인 역할 (0) | 2022.10.18 |
인생을 잘 살고 싶으면 제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라 (0) | 2022.10.06 |
태풍 11호 "힌남노"에 대한 생각 (2) | 2022.09.05 |
거머리 사회 (0) | 202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