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쟁은 주로 개인간에 생기는 분쟁이다. 어쩌면 불협화음일 수도 있다.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언쟁들이다. 무조건적인 반대 역시 쉽게 나타나질 않는다. 그것은 절교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쟁은 긍정적인 찬성의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들이다.
논쟁은 조직속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최소의 RISK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위한 경제전쟁이고 이념전쟁이다. 진영이 다르면 더욱 치열한 싸움이 생기고 같은 조직이면 보다 우호적인 방향에서 목표지향적인 자세간 된다. 개인적인 불편함보다는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기에 참아 넘길 수도 있고 잊을 수도 있는 논쟁을 한다. 그런데 논쟁의 결과가 모두 좋은 結果를 만들지는 않았다. 특히 전쟁은 더욱 참혹한 결과만을 만들어 냈다 논쟁의 효과를 잃은 것이다. 목표를 정하기 위한 과정이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면 결과는 최악성을 나타내고 보다 광범위한 경우의 수를 고려한 것이라면 안한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논쟁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주입식이 아닌 것이다. 나름의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방향을 찾아서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논쟁은 늘 긍정적인 찬성파를 만든다. 그렇다고 표시 나게 적극적인 찬성을 하게 되면 생각이 없고 딸랑거린다는 비방을 받기에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근거 없이 무조건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근거있는 반대를 하면 RISK를 고려한 대안이 나오게 되고 그 대안속에 새로운 리스크를 찾아 가장 적은 리스크만을 남기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그래서 논리적인 반대의견은 좋은 논쟁꺼리가 되어 좋다.
언론은 조직이 있고 사명이 있고 이득이 있어야 존재한다. 그런데 이득을 위해 사명을 저버린다면 존재의 기간은 매우 짧아지게된다. 공정한 보도는 근거가 있고 누구나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신뢰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상품가치가 있고 확장성이 확보된다. 그런데 편향적이면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상품성도 제한적일고 확장성보다는 축소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그래서 종합편성프로그램도 언론도 거의 죽었다. 대안이 YOUTUBE가 되어 버린 것이다. 투명한 정보가 일반적인데 같은 정보를 왜곡하고 음해하고 조작하고 공작처리하는 행위를 더 이상 논쟁꺼리로 보지 않고 폐기처리 대상으로 보기에 외면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언쟁은 반박자 숨고르기를 통해 외면해도 된다. 그런데 조직적인 논쟁은 싸움이고 이득이고 미래성이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이 아니라면 끝없는 논쟁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 싸움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기에 유연성 있게 대응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