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삶은 끊임없는 選擇들로 둘러 싸여 있었던가?!
自意的인 선택인가 他意的 선택인가 아니면 無선택이던가!
자의적인 선택일 경우에는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좋을 경우는 만족스러운 기쁨의 결과가 있고,
나쁜 경우는 삶을 포기하는 결과까지도 이르게 된다.
하지만 나쁜 경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살아간다.
책임을 다하는 삶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기에
변명과 타협 그리고 비겁함이라는 본성으로 살아간다.
매우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유형의 사람들이
남들보다 많은 선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을 善導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權力이라는 맛을 누리고자하는 욕망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인 욕망이 있는 자를 선택하는 순간
본인은 奴隸로 전락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歷史가 증명한다.
전쟁을 만든자들이 최악의 유형이고
다음은 타인의 재산과 생명을 탈취한 자요
세번째는 조작과 음해와 모략으로 타인을 현혹시킨 지식인들이다.
타의적인 선택인 경우에는 주도자의 언저리에서 그냥저냥 살아간다.
좋은 결과에 대한 떡고물을 맛보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권력의 맛도 보게된다.
나쁜 결과일 경우에도 마음의 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부류에 속한다.
生老病死의 일반형이면 塞翁之馬를 무기처럼 여기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계급사회에서는 평민이요
현대적으로는 일반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극한의 궁지에 몰리기 전에는 자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복지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사람들의
삶의 기본권을 끊임없이 유지 발전시켜주는 것이다.
또한
국방과 외교 그리고 문화와 경제를 내외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나 현재도 이런 국가와 사회은 매우 극소수만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결국에는
구성원의 수준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혜택일 것이다.
구성원의 수준차가 크고 넓을 경우에는 이용대상이 될 뿐이다.
그래서 교육과 경제수준이 自立的이어야 한다.
무선택자들은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기에 無視다.
그들이 傍觀하면 상대도 역시 방관을 한다.
아무런 영향력이 없기에 굳이 염두에 두거나 혜택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영역에 속한다.
오직 개인적인 삶이 우선이 자들이다.
타인에게 간섭 받지 않고자 함이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삶은 없다.
오히려 타인에게 더 심하게 간섭과 억압과 강요를 받는 부류이다.
주도적인 삶을 사는 자들의 수는 20%이하일 것이고
추종적인 삶을 사는 자들의 수는 60%이하일 것이고
방관적인 삶을 사는 자들의 수는 20%이하일 것이지만
제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자들이 방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누구나가 마구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기때문이다.
昨今의 상황의 대한민국은
80%정도가 선택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선택과 다른 결과로 인해 심적고통과 상황적인 불행을 맛볼 수도 있지만
누구도 권력욕을 표출할 수가 없다.
저항을 감당할 수가 없기때문에 타협을 해야한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적폐들의 사생적인 저항에 주춤할 뿐이다.
결국엔
死生的인자들에게 선택권을 빼앗긴자들의 몫은
또다시 사생적인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희생을 해야한다.
이것이 슬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