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상의 인구는 70억명이 넘는다. 나라는 200개가 조금 넘는 것 같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者는 극소수인지 좀처럼 밝혀지지 않고 있다. 生老病死와 함께 喜怒愛落을 달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년도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나름의 삶의 意味를 제시하지만 본인도 안되는 이상적인 것을 주장하는 바보같은 짓을 해도 높이 평가를 한다. 神이라는 것을 만들어 추종하고 믿고 믿게 하며 나름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강제로 억압하는 짓거리를 하는 집단들도 있다. 人生到處有上手라고 했다. 아무리 잘나고 뛰어나도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인데 인간은 "잘 난 맛에 살다."라고 하면서 거드름이 피우는 것이 일반적인 습성이다.
정상적으로 태어나 무탈하게 유년기를 보낸 것은 幸運일 것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는 것 없이 그냥 평범하게 건강하면 족하다는 것은 축복이다. 무엇인가 잘 한다는 것은 재능도 있고 집중적인 시간투자를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접하고 다양하게 느끼고 다양한 해결책들을 경험한 者는 축복 받은 삶의 시작점을 얻은 것이다. 그래도 그냥 건강하고 밝게 자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독립을 의미한다. 주위로 부터의 지원과 직접적인 도움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서서 삶의 主體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면서 행복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책임짓고 결과에 대한 오롯한 성과를 독식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사회구조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반적인 선택이고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롯이 본인만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도움을 많이 받으며 독립된 삶을 猶豫받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공부는 더욱 많은 혜택과 독립된 삶의 유예성이 크다.
직장을 선택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것은 넉넉함이 없이는 갈등의 연속이다. 본인만의 만족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만족해야 하기 떄문에 어려운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우선 필요하지만 물질이 채워지면 정신이 공허해지고 정신이 채워지면 문화가 공허해 지고 문화가 채워지면 삶이 공허해 지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채워지는 것도 없지만 나름의 수준을 고려한 만족감은 본인과 주위의 현명한 삶의 지혜로 부터 얻어지는데 그만한 역량이 본인과 가족과 주위사람들이 가지고 있는냐도 문제다. 관계가 많아지면 갈등도 많아 지고 필요한 것도 많아 진다. "어느 선까지 선택을 하고 만족할 것인가"도 본인의 책임이다. 회피하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적당한 선을 가지고 이루고 지키는 삶은 행복이라는 비율을 많이 가지게 된다.
가족의 관계와 가정의 관계가 어느정도 정리되는 시기는 50대 중반이후부터가 일반적이다. 각자의 영역이 주어지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이 편안한데 욕심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면 생활에 힘이 들어가서 피로도가 가시질 않는다. 관리해야 할 것을 최소화 시켜야 하는데 몸을 늙어가는데 관리항목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가는 짓을 본인 스스로가 선택하는 우매함이다. 보편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중년의 여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면 중년에 가장 바쁘고 힘겨운 결정들을 매순간 해야한다. 제 한몸 가느기도 힘들어 지는 나이인데 움켜진 욕심은 더욱 삶의 힘겨운 무게로 다가 오는 것이다.
본인의 건강을 챙기고 주위가 무탈하면 인생의 70%는 성공한 삶이다. 나머지 30%는 살만한 경제력과 어울리는 知人들과 본인만의 즐거운 소일거리를 행하는 것이다. 富貴榮華를 얻는 것은 희생이 따른다. 평범한 것을 포기하고 투쟁과 희생과 고통과 악의와 시기와 질투와 갖은 험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인데 과연 의미가 얼마나 있겠는가! 대물림의 부귀영화는 무거운 짐만을 넘겨주는 결과를 만든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고통을 필연적으로 받게 된다. 또한 공명을 남긴 들 무엇이 좋은가.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는 행위 또한 희생의 산물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건강하고 즐거운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한 의미가 있고 살만한 것이다. 그러나 병들고 다투고 빼앗고 성취하고 대물림하는 것이 평범한 삶보다 좋다고 평가하는 자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많이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타인과의 투쟁은 오히려 손에 잡히지만 본인과 투쟁은 만족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본인과 투쟁보다는 순리적인 흐름을 쫒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적당한 건강과 지식과 경제력과 대인관계와 본인만의 강한 영역관리는 삶의 중요한 행복요소이다.
인생이란 별 것 아니다. 그러니 욕심보다는 평범한 삶을 지킬 수 있는 능력위주로 살아야 한다. 본인 성을 만들어 100년정도 살아간다면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증거이다. 이런 삶을 살아간 사람은 흔하지가 않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주위사람만으로도 만족하고 즐거워 하면서 살아가는 능력은 무엇인가를 쟁취하는 것보다 힘들다. 그래서 中庸이 불가능한 인간 습성이라서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육십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니 적당하게 건강하고 적당하게 경제적이며 적당하게 지인들이 있고 적당한 지식과 학문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름의 영역이 있고 침입자를 응징할 만한 힘이 있는 정도쯤이다. 그러나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고 돌봐야 하는 사람도 있으며 걱정거리도 있다. 끊임없는 숙제를 풀어가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겠지만 적당한 범위안에서의 자유함과 독립성은 갖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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