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가적인 삶

일상

공자에 미친 자들

인생도처유상수 2022. 8. 23. 09:23

2500년전에는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기본적인 삶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며 매순간의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전쟁은 늘상있고 식량은 부족하며 인간노예까지 존재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삶은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조금 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수명도 짧고 먹을 것도 부족하며 전쟁은 연속이고 질병은 늘상 무기력한 삶을 증명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부족하니 정신적인 것을 찾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인 삶의 돌파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상의 저변은 극단의 삶을 통해서 해방구를 찾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이 현실에서 찾을 수없다면 理想으로나도 찾아야 하는 필연적인 돌파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시대별로 늘상 사상가들이 등장하고 희망이라는 불씨를 보통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상가 자체의 문제를 나름의 돌파구로 꺼내 놓았는데 동조하는 사람이 있어 확대생산되는 경향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진리는 될 수가 없다. 보편타당하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물질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빈곤을 만들어 내었는지 과거 인물에 대한 사상들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종교의 유일신과 독점으로 인간존재 가치가 의미없게 된 경험도 쌓이고 넘치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추종하고 전파하는 과거의 사상가의 말들이 과연 위안이 될까나....

   인류역사로 보나 인간사로 보나 세상사로 보나 인간에게 절대적인 안식과 행복을 주는 대상은 없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문제해결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처럼 되어 있다. 같은 상황과 조건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문제풀이를 하게 되고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과거의 것은 참고일 뿐 추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추종의 결과는 끌려다니는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종교가 인간에게 안식을 준다고 설파하고 믿는 자들은 광신적인 자들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해결을 본인이 해야하는데 절대자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지하는 기도를 올린다. 그 시간에 몸과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서 보다 나은 결과를 얻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사상가의 말은 그냥 잠깐의 위로가 될 뿐이지 추종하는 대상은 될 수가 없다.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별 것 아니니 그냥 편안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본인의 짧은 인생시간동안 무엇을 만들고 누릴 것인지는 매순간의 방향과 움직임 속에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특별한 변수가 작용하지 않았을 때나 가능하다. 아파거나 다른 문제해결을 우선으로 처리하게 되면 원래의 목표와 목적이 수정되거나 변경된다. 그래서 인생의 가는 길은 알 수가 없다는 현상들을 누구나에게서 보게 되는 것이다. 종교이든 지식이든 사상가의 말이든 역사적인 배움이든 그냥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누군가 도와 주거나 보이지 않는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행동이다. 예기치 않는 운도 있고 실패도 있고 최악의 경우와 최대의 경우도 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도 신의 개입도 아니다. 그냥 누구나에게 다양한 현상이 주어지는 것 뿐이다. 그래서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살아 가는 것이다. 짧은 인생의 순간들을 나름의 행복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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