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의 단순미와 강인함이 있었다.
불교가 국가 신앙이었던 고려의 힘이 있었다.
오대산 월정사가 표본으로 삼은 것 같아 보였다.
해안가에 가깝지만 육지 같은 곳에 자리 잡고
내변산 넓은 골짜기에 믿음의 주춧돌을 넣은 곳
찾는 이가 존경, 경외, 희생을 하게 만들었다.
지형을 잘 살리고, 잘도 숨어 있었다
갈급한 사람만이 누리는 소원성취 처다
천년 전이나, 현재나, 미래에도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빼벌마을 (2) | 2024.11.12 |
---|---|
좋은 풍경은 눈을 풍요롭게 하지만 삶의 편리성은 외면한다. (0) | 2024.11.11 |
인성이 사라진 원인 (12) | 2024.11.10 |
변산반도 내변산 직소폭포 (0) | 2024.11.10 |
왜 꾸미는가 (0) | 2024.11.09 |